감사의 마음을 담은 손거울, 떠나는 사람의 취향을 떠올리며 고른 송별 선물, 가족 같은 멤버에게 건넨 축의금. 동료에게 쓴 돈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그 사람과 함께 일한 시간을 헤아리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좋은 동료를 떠올리다가 과거의 자기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고, 오래 머문 조직을 돌아갈 집에 비유하기도 했다.
「쓴만큼」의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4화 ‘너 내 동료가 돼라’에서는 매거진B 박은성 편집장, 민음사 해외문학팀 유상훈 편집자, 코요태 멤버이자 포토그래퍼인 빽가(백성현)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유상훈의 오랜 동료인 민음사 해외문학팀 박혜진 편집자가 게스트로 함께했다.
영상 속 대화에 박은성·유상훈·빽가와 게스트 박혜진의 사전 서면 답변을 더했습니다. 영상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확장 인터뷰입니다.
동료에게 쓴 돈 가운데 무엇이 기억에 남나요
최근에 혜진 씨와 민경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샤넬 손거울을 선물했어요. 같이 일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유튜브에서도 두 분이 저를 잘 이끌어주셨거든요. 요즘 방송에 많이 나오시니까 거울이 필요할 것 같기도 했어요. 화장품 콤팩트처럼 생겼는데 안에는 거울만 들어 있어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선물하기에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고요. 두 분이 무척 만족해하셔서 기뻤어요.
도서전 기간이라 엄청 바쁠 때였는데, 선배가 양손에 샤넬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민경 님과 저에게 하나씩 주셨는데, 열어보니 정말 필요한 물건이었어요. 저희는 촬영할 때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거든요.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인하는 것과 거울로 보는 건 다르잖아요. 딱 유용한 선물이어서 너무 좋았어요.
한 회사에서 오래 관리자 역할을 하다 보니 그동안 꽤 많은 직원의 퇴사를 지켜봤어요.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떠나는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송별 선물을 챙겨주는 편이에요.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무엇을 주면 좋아할지, 조금 놀라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죠. 저는 의외의 선물을 받았을 때의 반응을 좋아하거든요.
한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간의 횟수를 생각하면 모두 합쳐 제법 큰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선물을 주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송별회를 하다 보니, 어떤 직원은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대우가 더 좋다고 농담하더라고요.
저는 코요태 멤버들의 축의금이 떠올랐어요. 너무 사랑하고 가족 같은 두 사람이 결혼하는데, 평소에 내는 것보다 정말 많은 금액을 드렸어요. 정확한 액수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주면서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 덕분에 제가 얻은 게 너무 많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가진 걸 다 줄 수는 없으니까, 앞으로도 마음으로 표현하고 다른 기회가 있을 때 더 챙기려고 해요.
함께 일하면서 힘을 얻는 동료는 누구인가요
최고의 동료를 떠올리면 의외로 인턴 친구들이 먼저 생각나요. 아직 어떤 습관이나 관성에 젖어 있지 않고, 일을 배우려는 마음은 충만한 반면 책임이나 부담에 짓눌리지는 않은 시기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서로 도우면서 재미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에너지가 전염돼요.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랄 때도 있어요. 저는 익숙한 패턴 안에서 조금씩 바꿔가며 생각했는데, 그 친구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거든요. 뮤지션의 첫 앨범이나 영화감독의 데뷔작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재능이 매력적으로 드러날 때와 비슷해요.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하는 부러움도 있고요. 대개 짧은 동행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들이 이곳에서의 첫 경험을 고맙게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되면 뿌듯하죠.
본받을 점이 있는 동료라고 한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이끄는 팀장님이 떠올라요. 제게 부족한 것이 평정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분은 정말 평정심을 사람으로 만든 것 같은 분이에요. 일이 꼬이거나 사고가 생겨도 호들갑을 떨거나 누구 잘못인지부터 따지기보다 문제 해결로 바로 나아가시거든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당황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수습도 어려워지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평정심을 저도 길러야겠다고 생각해요. 일을 할 때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한 태도 같고요.
저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있잖아요. 세 사람이 20년 넘게 함께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희도 많이 싸우고 부딪혔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는 건 두 사람이 정말 좋은 동료라는 뜻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함께할 것 같고요.
저는 친구와 동료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봤어요. 친구는 일대일의 관계가 중심이라면, 동료 사이에는 회사의 평가나 경쟁 같은 제삼자의 시선이 있잖아요. 그래서 동료에게는 내가 이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그 관계를 지킬 수 있더라고요. 회사 안에서 긴장을 낮춰주고 서로 마음 편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동료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둘이 있을 때도 계속 평가받는 것처럼 느껴지면 마음이 불편해지고요.
최악의 동료를 떠올리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 적도 있나요
처음에는 여러 얼굴이 지나가는데, 결국에는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초년생 때 저는 무척 개인주의적인 동료였어요.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되고, 나만 인정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선배가 경주마 같다고 한 적도 있어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는 뜻이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왜 문제인지 몰랐어요.
잡지는 각 에디터가 자기 칼럼을 맡지만, 그 글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요. 따로 일하면서도 함께 만든다는 감각을 놓치면 안 되는 거죠.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노하우를 다음 사람에게 전할 책임도 있고요. 관리자가 되고 나서야 제가 예전에 놓쳤던 모습이 보였어요.
다 같이 간식이나 야식을 먹으러 갈 때도 혼자 자리에 남아서 원고를 썼어요. 그때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마 ‘저는 괜찮아요’였을 거예요. 왜 꼭 모여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지금 돌아보면 함께 맞춰갈 필요가 있는 순간에도 너무 칼같이 선을 그었던 것 같아요.
실수 자체는 꼭 흑역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부인할 때가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기획한 책이 두세 번 잘되면 그게 전부 제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히트작에는 회사의 힘도 있고, 사회적인 때와 운이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어요.
그걸 읽지 않고 오롯이 제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오만해지죠. 다음 기획이 잘 안 됐을 때 새로운 전략을 생각해야 하는데, 제 실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전제를 놓지 못하고 남을 탓하게 되는 거예요. 돌아보면 저에게도 회사에도 좋지 않은 태도였어요.
그런데 후배로서 말씀드리면, 상훈 선배의 기획력은 정말 뛰어나요. 해외문학 작품을 보는 감각이 좋고, 어떤 작가가 크게 주목받기 전에 이미 작품을 계약해놓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상훈 선배가 고른 작품’이라고 하면 다들 한 번 더 보게 돼요. 선배의 반성을 들으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 역량만큼은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선배를 보며 배우고 싶다고 느꼈나요
패션 어시스턴트를 거쳐 패션 에디터를 꿈꾸던 시절에는 멋진 비주얼을 구현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았어요. 그러다 영화지로 옮겨서 정식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텍스트를 능숙하게 다루고 인터뷰를 잘하고 영화에 해박한 선배들이 모두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도 강했고요.
특히 글을 잘 쓰고 직설적으로 피드백해주는 선배에게 배우고 싶었어요. 제 원고에 빨간 펜으로 그어준 자국도 귀하게 느껴졌죠. 비판을 받는 게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그때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어요. 선배의 기획 방식과 글 쓰는 스타일을 닮아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잘못했을 때 깔끔하게 사과하는 선배를 보면 존경심이 생겨요. 업무의 큰 그림을 알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실수가 생겼을 때 무엇이 잘못됐고 전체 과정의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말로는 쉬운데 막상 회사에서는 사과가 어렵더라고요. 실수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렵고, 또 실수했다는 생각에 변명부터 나오기도 하니까요. 저도 어떤 업무를 누락했을 때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되는 상황에서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면피하는 말을 한 거죠. 그래서 더더욱 자기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분들을 존경하게 돼요.
돌아보면 쑥스러운 시절도 있었나요
사진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제가 정말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느꼈던 시기가 있었어요. 머리를 기르고, 살을 빼고, 6개월의 휴가가 생겼을 때 공항에 전화해 가장 빠른 비행기를 물어보고 파리로 간 적도 있어요. 막상 도착해서는 아는 곳이 에펠탑밖에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갔죠.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지도 정해놓지 않았고요. 우연히 한국을 안다는 분을 만나 호텔을 구하고 친구들을 소개받아서, 파리에서 한동안 지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가로수길의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할 일도 없는데 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이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요. 지금 돌아보면 제가 말하는 ‘아티스트병’이었던 거죠. 그 시절이 제게는 흑역사로 남아 있어요.
저는 입사 초기에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 모습이 생각나요. 개인적인 문제가 생기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표정에도 드러났던 것 같아요. 저는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배가 계속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줄 알았는데, 지금도 그 구분이 어렵기는 해요. 예전에는 사적인 일이 회사로 넘어왔다면 이제는 회사 일이 집으로 넘어가는 쪽에 가까워졌어요. 일이 잘 안된 날 집에 가서 한숨을 쉬고, 가족들이 걱정해주시면 죄송하고요. 일을 마치면 마음도 딱 전환할 수 있는 분들을 보면 유능해 보이고 부럽기도 해요.
저희 일도 그런 점에서는 정말 힘들 때가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행사 무대에 올라야 했는데, 저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올라가니까 춤추고 웃고 있더라고요. 무대를 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괴로웠고요. 내려오자마자 멤버들이 너무 잘했다, 힘내줘서 고맙다고 해줬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방송에서는 웃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지금은 어떤 동료가 되고 싶나요
평정심을 가지고 일이 되는 방향으로 풀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도 감정에 쉽게 흔들릴 때가 있지만, 크게 보면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지 제 존재 전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존심이나 미움 때문에 스스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따질 건 따지되, 감정싸움으로 키우기보다 어떻게 해야 잘 풀릴지를 먼저 보는 거죠.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해결책을 주는 사람이요. 저는 누가 힘들어하는지 빠르게 알아차리고 마음을 공감해주는 데는 서툰 편이에요. 대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찾죠. 이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법, 그게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요. 물론 상대는 공감을 원했는데 저만 계속 해결책을 내놓는 경우도 있어서 장단이 있어요.
다들 하고 싶지만 불안해하는 일이 있으면 제가 먼저 해보겠다고 나서는 편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앞에서 먼저 부딪혀봐야 뒤에 있는 사람들이 덜 불안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건 동료들의 긴장과 불안을 풀어주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할 때 편한가요
자기 일을 잘하되 중요한 순간에는 짧고 명확하게 논의할 줄 아는 사람이요. 일의 맥락과 경중을 파악해서, 무엇을 스스로 판단하고 무엇을 함께 결정해야 하는지 아는 감각이 중요해요. 모든 과정에 똑같은 에너지를 쓰면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힘이 빠지잖아요. 회사 일은 계속 이어지니까, 강약을 조절하면서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트가 있는 사람과도 잘 맞고요.
저는 말을 그대로 이해해도 되는 사람이 좋아요. 이 말에 무슨 숨은 뜻이 있을지, 힘겨루기를 하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하면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반대로 선배가 한 말은 딱 거기까지만 생각해도 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만큼 일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의미를 해석하느라 쓰는 시간을 일에 쓸 수 있다는 게 큰 차이예요.
저는 재미있는 사람이 좋아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려는 사람이잖아요. 장난으로 저를 놀려도 밉지 않은 사람이 있고요. 반대로 방송할 때와 카메라가 꺼졌을 때의 태도가 너무 다른 사람과는 일하기 어려워요. 사적인 모습을 알고 있는데,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면 그 사람에 관해 좋게 이야기해달라는 말을 들어도 쉽게 나오지 않거든요.
한 조직에서 오래 일하면 무엇이 쌓이나요
저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려요. 혼자 해보려는 성향이 있어서, 이직을 자주 했다면 동료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재미를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지내면서 비로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너스레도 생겼거든요. 친한 민경 편집자와도 처음 몇 년은 계속 ‘민경 님’이라고 불렀어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관계가 달라진 거죠.
오래 몸담을수록 조직의 시간과 변화가 제 경험의 일부가 돼요. 억지로 주입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쌓인다는 게 장점이에요.
다만 일하는 사람으로서 저를 객관적으로 보는 감각은 무뎌질 수 있어요. 지금 조직 안에서는 일하는 방식이 최적화되어 있지만, 다른 환경에 가면 저는 어떤 일꾼일까 생각할 기회가 줄어들거든요. 이곳을 떠나 전혀 다른 곳에 놓였을 때도 잘할 수 있을지, 그런 두려움은 조금 있어요.
저는 편안함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모험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라서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안정감이 참 좋아요. 겨우 뿌리내린 식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것처럼,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무척 힘들 것 같거든요. 오래 일하면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바꿔갈 수 있다는 점도 다행이라고 느껴요.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
촬영 전 답변지에는 함께 일하는 거리와 팀워크, 동료에게 먼저 마음을 전한 경험도 담겨 있었다. 영상에서 이어진 대화를 박은성·유상훈·박혜진의 서면 답변으로 조금 더 넓혀본다.
동료와 가까워지는 데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까요
너무 그 사람을 알려고 덤벼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다 보면, 친해질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다른 사람과도 매끄럽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요.
일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해요. 일에 애정은 갖되 개인적인 애착까지 지나치게 담지는 않으려고 해요. 삶의 여러 영역에서 제게 중요한 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이에요. 오래 일하게 하는 힘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좋은 팀워크는 모두가 친하다는 뜻일까요
매거진B 같은 잡지를 만드는 데 팀워크는 꼭 필요해요. 좋았던 때와 나빴던 때를 모두 경험해보니, 그 차이가 결과물에도 크게 반영되더라고요. 다만 모두가 잘 맞고 늘 화기애애해야 좋은 팀워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각자의 일과 역량, 재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상태에 더 가까워요.
회사는 일을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일이 잘되는 것도 중요해요. 효율적인 대화와 소통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사업적으로 일이 잘되게 하는 판단과 결정이 있어야 하죠. 그런 점에서 리더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하나의 유기체라고 생각하면, 건강하게 움직이려면 각 부서와 사람이 한 팀으로 힘을 발휘해야 하잖아요. 민음사TV나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관심도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한 사람들이 함께 이룬 결과라고 생각해요.
동료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세계문학전집 500권을 기념하는 『세계문학전집 이야기』를 함께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였는데,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을 조금씩 나누어 했죠. 도와달라고 말하면 대개 도와주잖아요. 그런데 제가 말하기 전에 먼저 힘드냐고, 필요한 건 없느냐고 물어봐주는 게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팀워크도 그렇게 조금씩 양보하면서 생긴다고 생각해요.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사람이 한 번 해줬다는 기억이 있으면, 저도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어지거든요. 제가 먼저 그런 마음을 전할 수도 있고요.
좋은 것을 발견했을 때 떠오르는 동료가 있나요
저희 편집부에서는 옷이나 액세서리, 책 같은 것을 많이 나눠요. 정말 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사실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그냥 버리는 게 더 쉬울 때도 있는데, 그렇게 나누고 싶은 동료가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해요.
얼마 전에는 『고양이 폭풍』이라는 동화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고양이를 키우는 팀 내 두 선배에게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절판이어서 헌책방에서 상태가 좋은 중고책을 구해 드렸죠. 두 분이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무언가 좋은 걸 봤을 때 ‘이건 그 선배 취향인데’ 하고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오래 일하는 힘을 묻는다면, 저는 애정하고 존경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래 함께한 동료는 어떤 존재인가요
각자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집이 있잖아요. 저에게 코요태가 그런 집이에요. 제가 혼자 일하고, 종민이 형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신지도 자기 일을 하지만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거죠. 실수하더라도 보듬어주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반대로 제가 밖에서 한 실수가 저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멤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조심하게 돼요. 제가 빽가이기 전에 코요태의 멤버라는 생각이 강하게 있어요. 처음에는 그걸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오늘 촬영장에 와서 상훈 선배의 뒷모습을 봤는데, 조금 긴장하신 것 같더라고요. 분위기를 풀어드리고 선배에게 힘과 에너지, 지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함께 출연하는 분들과 스태프분들을 만나고 나니 안심도 됐고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이라 선배의 섬세한 면도 아니까요. 좋은 분들과 즐겁게 이야기하시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동료에게 건넨 선물에는 함께 일하며 받은 도움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대화가 깊어지자 서로를 편하게 하는 말, 실수 앞에서의 태도,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는 거리까지 이야기의 범위가 넓어졌다. 오래 함께 일하는 동안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돌아보는 일은,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동료인지 묻는 일이기도 했다.
편집 안내
이 글은 「근로소비자」 4화에서 박은성·유상훈·빽가와 게스트 박혜진이 나눈 영상 대화와 사전 서면 답변을 엮은 확장 인터뷰입니다. 본문 답변을 보강하고, 영상에 담기지 않은 별도 사례와 질문은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에 모았습니다. 문장은 읽기 좋게 다듬었으며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긴 속기록은 아닙니다.
채널 소개
「쓴만큼」은 돈과 시간을 쓴 만큼 그 사람이 보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채널입니다.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소비와 삶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