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좋아해 의류학과에 갔지만 옷을 만드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공부가 너무 좋아 대학원에 갔지만 결국 그 길을 떠났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진을 찍을 때에는 이름을 숨기고 싶었다. 세 사람의 근로 이력에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바라던 일과 실제로 해본 일 사이를 오간 시간이 담겨 있다.
「쓴만큼」의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3화에서는 소비를 뒷받침해온 근로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매거진B 박은성 편집장, 민음사 해외문학팀 유상훈 편집자, 코요태 멤버이자 포토그래퍼인 빽가(백성현)가 지금 하는 일을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오래 일하며 달라진 생각을 이야기했다.
영상 속 대화에 박은성·유상훈·빽가의 사전 서면 답변을 더했습니다. 영상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확장 인터뷰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1997년에 댄서로 시작했어요. 그때는 백댄서라고 불렀죠. 이후 JYP에서 어린 연습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그러다 가수 오디션을 보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게 코요태였어요.
사진은 고등학교 때부터 전공했어요. 코요태 활동을 할 때 음악방송 대기 시간이 길면 종민이 형을 따라 PC방에 가곤 했는데, 게임 말고 사진을 올리는 사람을 봤어요. 싸이월드였죠. 저도 찍어둔 사진이 많으니까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빽가라는 이름을 보고 사진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싫었어요. 그래서 이름의 ‘백’을 숫자 100으로 바꿔 by100으로 올렸어요.
그 사진을 보고 보그 에디터에게 연락이 왔어요. 일반인 중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이었죠. 그 뒤에는 패션 사진을 찍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첫 촬영을 타블로 씨와 했어요. 이후 다른 잡지들과도 일하면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옷과 패션잡지를 좋아해서 의류학과에 갔어요. 패션 일을 하려면 그 전공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죠. 그런데 실기 수업을 듣고 금방 알았어요. 옷을 좋아하는 것과 만드는 건 다른 일이더라고요. 패턴을 만들거나 크로키를 하는 데에는 손재주가 없었어요.
졸업 후에는 엘르의 패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어요. 이후 그 미디어회사의 인턴으로 여러 잡지를 두세 달씩 순환 근무했는데, 당연히 패션잡지에 남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영화잡지에서 보낸 두 달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선배들과 일하는 방식도 새로웠고,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죠. 결국 영화지 프리미어를 희망했고, 그곳에 정식 에디터로 들어갔어요.
프리미어가 폐간된 뒤에는 엘르로 돌아갔다가 까사리빙으로 옮겨 인테리어와 가구, 사람에 관한 기사를 만들었어요. 그다음 매거진B에 팀장으로 합류했고, 이후 편집장 역할을 이어받았어요. 한 분야만 따라온 경력은 아니지만, 지금 다양한 브랜드를 다룰 때 그 경험들이 도움이 돼요.
저는 처음부터 큰 계획이 있지는 않았어요.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어문학을 복수 전공했는데, 공부가 너무 잘 맞았어요. 알고 싶고 읽고 싶은 것만 들여다보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죠. 그런데 대학원은 제가 기대한 것과 많이 달랐어요. 경직된 분위기가 버거웠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결국 그 길을 떠났어요.
그다음에는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찾아야 했죠. 패션잡지도 좋아했으니 유니클로에도 들어갔어요. 입사를 준비하고 교육을 받는 데 거의 반년을 들였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제 성향에 맞지 않더라고요. 치열한 서비스 현장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진 능력 중 하나는 감동하는 능력이에요. 책을 읽고 감동하고, 그 좋은 점을 알아보는 능력을 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출판사로 왔죠. 문학을 다루고 서울에 있는 민음사가 제게는 좋은 선택이었어요.
좋아하는 일이면 적은 월급도 괜찮았나요
어시스턴트 때는 정해진 월급이 아니라 일을 한 날에 따라 돈을 받았어요. 한 달에 촬영이 며칠 잡히는지도 일정하지 않았고요. 수입이 적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이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다른 직업에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경험을 일종의 보상으로 여기기도 했어요. 새로운 곳에 가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죠. 처음 몇 년은 그런 경험의 즐거움이 컸어요.
오히려 연봉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 건 중간 연차에 접어들면서였어요. 일이 손에 익고, 처음처럼 모든 일에 온 힘을 쏟지 않아도 되면서요. 고생이 조금 줄어드니까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조건이 보이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과 생활의 조건을 따져보는 마음이 함께 생긴 거죠.
출판사 월급이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이미 다른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이 얼마나 버는지도 알았고요. 그래도 제게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더 절실했어요. 맞지 않는 일을 해보니, 일을 맡기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괴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무대의 주인공과 촬영 스태프로 일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가수일 때와 포토그래퍼일 때 제 위치가 완전히 달라요. 제가 무대에 서는 사람일 때는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움직여주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스태프의 입장이 되어보니까 그분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셨는지가 보였어요.
양쪽을 다 경험한 건 좋은 점이에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니까요. 반대로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도 더 잘 보이죠. 연예인으로만 활동했다면 겪지 않았을 일도 사진가로 일하면서 겪었어요. 그래서 저는 촬영장에 가면 먼저 인사하려고 해요. 누군가 한 명이 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하는지 아니까요.
회사를 나가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연예인이라는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잖아요.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다른 일도 해봤어요. 그러다 보니 두 분은 지금 하는 일이 끝났을 때를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했어요.
밖에서 제 이름으로 일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경력이나 노하우가 있으니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 그럴 때면 회사가 바빠지거나 조직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요. 그러면 제 미래에 관한 고민은 또 뒤로 가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과 규율이 있는 생활이 잘 맞아요. 스스로 모든 동기와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어요. 시스템을 갖춘 조직에서 일하면 개인이 쉽게 덤빌 수 없는 일도 규모의 힘으로 해낼 수 있잖아요. 아직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느껴요.
힘들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날에도, 다음 날이면 마음이 어느 정도 초기화되는 편이에요. 일을 위해 완전히 다른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고요. 일하는 제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것, 그게 계속 이 일을 하게 하는 이유 같아요.
저는 제 일을 벌이고 운영하는 데 쓸 에너지가 별로 없어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데에도 오래 걸렸잖아요. 편집이라는 일이 그나마 제게 맞는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앞으로도 이 일을 이어가고 싶어요. 다른 일을 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크지 않고요.
잡지 에디터에게는 글을 쓰는 것 말고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요
에디터를 글을 쓰고 화보를 연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일을 조직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에 가까워요. 하나의 촬영에도 인터뷰이와 사진가, 매니지먼트, 스타일리스트, 헤어와 메이크업 담당자까지 여러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각자의 일정과 조건을 맞추고, 콘셉트를 공유하고, 변수가 생기면 해결해서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야 해요.
그런 프로젝트를 한 달에 여러 개씩 동시에 진행해요. 아이디어가 좋다는 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훈련을 계속하는 셈이죠.
에디터 출신들이 개인의 이름으로도 여러 일을 하는 데에는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사람들을 모아야 할지 파악하는 데 익숙하니까요. 글이나 말을 잘하는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일을 하며 저지른 실수 중 무엇이 가장 오래 남았나요
코요태에 들어가고 한 달도 안 됐을 때 생방송 무대를 펑크 낸 적이 있어요. 종민이 형과 같이 살 때였는데, 다음 날 아침에 생방송이 있는데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어요. 집에 와서 형을 깨우고, 형이 씻는 동안 앉아 있다가 잠들어버렸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생방송 시작 시각을 넘긴 거예요. 전화를 했더니 짐을 싸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고, TV를 켜보니 신지와 종민이 형 둘이 무대에 서 있었어요. 너무 무서웠죠. 형에게 사과했는데 “그냥 편하게 술 마셔”라는 말이 돌아왔어요. 형이 얼마나 화났을지 지금은 알겠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방송 전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업무 자체에서 생긴 실수는 대부분 만회할 수 있었거나 주변의 도움으로 크게 번지지 않았어요. 벌어진 일로 저나 다른 사람을 오래 책망하는 편도 아니고요.
오히려 오래 남는 건 관계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순간들이에요. 꼭 해야 할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거나, 동료의 마음과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거나, 관계의 중요성을 놓쳤던 일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제 판단이 실수였다는 걸 알게 되죠.
이런 실수는 수습도 쉽지 않아요. 뒤늦게라도 솔직한 마음을 잘 전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오래 얽매이지 않고 털어내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책에 남은 오탈자가 큰 실수예요. 글을 오래 읽으면 글자 하나하나보다 문맥을 따라가게 되잖아요. 잘못된 글자가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맞게 읽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책이 나온 뒤에 발견하면 정말 괴로워요.
누군가 ‘최후의 교정은 독자가 본다’는 말을 해줘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적은 있어요. 그래도 상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최상의 품질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남아 있죠. 잘 팔리는 책이라면 다음 인쇄에서 고칠 기회라도 있는데, 다시 찍지 못하면 그 상태로 남으니까요. 매번 고비예요.
AI가 일을 바꾸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저도 AI를 쓰고 있어요. 틀린 답을 줄 때도 있지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아요. 가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뮤직비디오나 재킷 사진을 만드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잖아요. 실제로 그 장소에 가지 않아도 원하는 배경이나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요. 그런 가능성이 흥미로운 거죠.
문학을 만드는 일에서는 사람의 창작과 번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만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지난날의 책을 읽다 보면 빗나간 예언과 예측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거든요. 제가 가진 식견으로 미래를 단정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지고요.
AI는 제가 하는 일도 바꿀 거예요. 이미 발목까지 차오른 밀물을 발로 걷어찬다고 바닷물이 물러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밀물이 들어오는 때구나 하고, 그 안에서 제가 숨 쉴 방도를 찾아야겠죠. 어딘가에 제 쓸모가 있지 않을까요.
기술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보다 지금 제 일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기사 자체는 제 생각과 손으로 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대신 글을 쓰기 전 자료를 찾거나, 쓴 뒤 오류를 확인하거나, 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외국어로 소통할 때도 유용하고요. 다만 확인을 맡겼다고 그 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
박은성과 유상훈은 촬영 전 답변지에 직업을 선택하고 이어온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적었다. 영상에서 길게 다루지 않은 두 사람의 경험을 더 읽어본다.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 구체적이 되었나요
중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패션을 좋아하니까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러 잡지를 읽고, 그중 좋아하는 잡지를 고르고, 거기에 실린 콘텐츠를 통해 제 취향을 정리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알게 됐어요. 이미 만들어진 창작물 중 좋은 것을 고르고, 편집하고, 평가하고, 말을 얹는 일을 좋아한다는 거였죠.
대학생 때는 다음이나 싸이월드에 비공개 커뮤니티를 만들어두고 패션 컬렉션 리뷰를 썼어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골라 짧은 기사를 쓰기도 했고요.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걸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현직 에디터나 지망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한 것도 진로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민음사TV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편집자가 글을 교정해주는 콘텐츠를 찍었어요. 그런데 편집자의 입장에서 어떤 문장은 무조건 맞고 어떤 문장은 틀리다고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해외문학은 원작자와 번역자의 문장, 그 선택을 고려해야 하거든요. 명확한 오역이 아니라면 여러 방향으로 다듬을 수 있고요. 단정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그 촬영분은 공개되지 않았어요.
한참 뒤 정중원 작가의 『얼굴을 그리다』를 다루는 마케팅 회의 콘텐츠에 출연했어요. 정말 좋은 책이어서 뭐라도 하고 싶었거든요. 그 책을 알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출연으로 이어졌어요.
소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외국의 해변에서 태닝하고 맥주 마시면서 지내고 싶어요. 그렇게 인생을 즐겨보고 싶죠.
음악에 관해서는 아직 풀지 못한 욕심이 있어요. 패션만큼 음악을 좋아했고, 음반사나 음악 콘텐츠를 다루는 곳에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매거진B를 만들며 애플뮤직 에디터를 만났을 때도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부러웠어요.
경제적인 조건에서 자유롭다면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취향을 나누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꼭 거창한 형태일 필요는 없어요. 친구들을 불러 함께 음악을 듣는 공간이어도 좋겠죠.
남프랑스나 토스카나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내고 싶어요. 와이너리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느긋하게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어요.
나에게 근로란 무엇인가요
발견이에요. 세상에 있는 좋은 책을 찾아 우리말로 소개하는 일이잖아요. 잘 알려진 언어의 문학뿐 아니라 태국어나 아랍어처럼 제가 평소 익숙하게 접하지 못한 언어의 작품도 만나게 되고요.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읽다 보면 결국 저 자신도 발견하게 돼요.
저에게 근로는 근로예요. 이 일을 좋아하고 오래 해왔지만, 일이 저의 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중요하게 여기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희로애락이요.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일이 다 있잖아요. 그걸 하나씩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언젠가 일을 마무리하는 때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세 사람이 고른 근로의 이름은 달랐다. 발견, 근로, 희로애락.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배우고, 다음 날에도 이어갈 이유를 찾았다. 그 시간이 소비를 가능하게 했고, 각자의 삶을 만들었다.
편집 안내
이 글은 「근로소비자」 3화의 영상 대화에 박은성·유상훈·빽가의 사전 답변을 더한 확장 인터뷰입니다. 본문 답변을 보강하고, 영상에 담기지 않은 별도 사례와 질문은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에 모았습니다. 문장은 읽기 좋게 다듬었으며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긴 속기록은 아닙니다.
채널 소개
「쓴만큼」은 돈과 시간을 쓴 만큼 그 사람이 보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채널입니다.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소비와 삶을 이야기합니다.